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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서

(Updated: 2014년 2월 25일)
thinking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수련회 때였죠.  땀방울이 핏방울 되기까지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였던 모습.  하나님이 부재한 곳, 곧 죄를 짊어지고 사망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그곳으로 가시기 까지,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우셨으면 그렇게 까지 기도를 하셨으며, 심지어는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라고 기도하셨을까.  막연히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죽으신 예수님,”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하며 세뇌를 당하였던 것 과는 크게 다른 이해됨이었습니다.  조금 더 개인적이고 인격적이고 또 실제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런 진심어린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왜 나를 위하여 그를 보내셨으며, 예수님은 왜 그렇게까지 하며 날 위해 죽으셨나요?  내가 대체 무엇이라고, 하나님의 그 사랑은 대체 어떤 것이길래 그러신 건가요?” 그리고 하루는 골로새서 3장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는데, 평소 듣고 알고 있던 구절이었음에도 전혀 새로운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마저도 이해가 되던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내가 나와 분리되어 이전의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아! 내가 이전에 그런 것에 빠져 살 때는 그렇게 행동하였구나.  내 욕망들이 우상이었구나.  내가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니.  이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어야겠구나.”  그런데 옷은 매일 입고, 갈아 입고, 빨아서도 입고, 새 옷으로도 입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 새사람은 한 번 입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구나” 를 알게 되었고, 매일 새사람을 입도록 하여 달라는 매일의 기도제목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로는 매일 최소 말씀 한 절 구경하고 기도 한 마디를 내뱉지 않으면 심적으로 굉장히 불편합니다.  빨지 않은 옷 입은 느낌, 응가 하고 밑 안 닦은 느낌 이려나요.  이정도 표현 가지고는 그 순간의 깊은 감동을 다 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표현을 더 하여도 어림 없고요. 그러나, 이 것은 모두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지나간 과거의 경험입니다.  매일 내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느끼고, 또 그를 전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자훈련에서 기대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 중 한 가지는 수 많은 낙심과 좌절을 끈임 없이 경험하는 것 입니다.  가장 높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것을 발견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 없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다가, 낙심하고 발 밑을 쳐다 보았을 때 발견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자 그분의 영광인줄로 믿습니다.  제자훈련 기간 동안 특히 많은 낙심과 좌절을 경험하며 더욱 낮아져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또 그에 힘입어 감사와 기쁨으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 다음의 기대함은 견고한 믿음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로마서 10장 17절에 쓰인 것처럼, 말씀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저의 믿음이 새롭게 되고, 더욱 견고해지며, 또 끈임 없이 견고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아!  그리고, 맛도 있고 몸에도 좋으며, 입에 넣을 때면 사르르 녹아 내리고 몸에 흡수 될 때면 약한 곳과 병든 곳이 치유되며 새롭게 되는 그런 육의 양식도 넘치도록 공급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생각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