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묵상하던 중에
내게 주신 시련과 고난과 교훈과 책망과 사랑의 말과 이적과 기적과 발자취들과 모든 약속의 말씀과.. 그 모든 헤아릴 수 없는 디테일들은 단 한가지 목적을 위한것임을; 바로 나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임을 내가 새로이 알았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 말씀에서 이전에는 눈 앞에 떨어진 아픔 앞에서 나도 또한 예수님이 행함으로 보여주신 기적들이 일어나길 바라왔으나, 그보다 큰 일; 내가 복음의 증인이 되어 믿음을 증거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훨씬 더 놀랍고 궁극적인 큰 일을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런 큰 일을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아무런 힘없는 나에게 보혜사(helper)를 주시며, 영원히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환경과 상황보다, 궁극적 목적이 중요하다고 보여주신 예수님.
“내 앞의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그가 나로 바다 위 걷게 하리”
이것은 단순히 놀라운 기적의 현상만을 바랄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풍랑이 심할 시간에 무모하게 제자들을 바다건너 저편으로 가도록 인도하신 예수님. 그에게는 제자들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하고자 하는 목적과 사역을 계속 해 나가야만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강풍이 일어날게 뻔한데도 건너가셨고, 예수님 입장에서는 그날 저녁 풍랑이 일어날 바다를 건너가는게 그리 문제될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강풍을 잠잠하게 하는 ‘기적’은 이루어야 할 ‘목적’에 비하여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까요. 베드로로 하여금 바다 위를 걷게 하신 예수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라는 제자들의 믿음의 고백을 위해, 그 믿음을 위해.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은 제자들의 더 깊은 믿음, 더 온전한 믿음이라는 ‘목적’, 더 나아가서는 그 믿음을 통한 구원과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리라는 궁극적 ‘목적’에 비하여서는 아무것도 아닌 수단에 불과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디테일에만 집중하던 나를 회개합니다.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고, 주께 더 가까이 하도록 하고, 구원을 받게 하고, 복음의 증인이 되고, 믿음을 증거하며, 구원을 위한 도구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 수 많은 디테일들을 내 앞에 선물로 주셨음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그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서 내 앞에 더 많고 더 크고 더 놀라운 디테일들을 선물 해 주실 것을 믿으며, 나의 시선을 당신의 시선이 있는곳에 두기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와, 나의 엄마와, 나의 아빠와, 그리고 우리 가족, 그리고 내 기도제목 중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세요. 믿음이 없다면 믿음을 주시고, 믿음이 작다면 크게 하여 주시고, 강하게 하여 주시고, 주께 더욱 가까이 이끄시고,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여 주세요. 처해있는 모든 환경과 상황은 목적을 위해 기적을 아낌없이 행하시는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