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4)
대단한 인물이 되는게 꿈은 아니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자하는 그런 원대한 포부가 있지도 않았다. 그냥 있는 자리에서 잔잔하고 선한 영향 끼치면서 누군가 행복하게 해주는 즐거움에 하루하루를 채우면서 그렇게 살고싶었다. 대단하게 살지는 못해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잔잔하게 열씸히 살아가는게 예의고, 도리고, 순종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도 훌륭한 효자는 못되어드릴지언정 그 심중에 근심이나 더해드리지 않으며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살고싶었다. 하나님께도 영광은 못 돌려드릴지언정 그 이름에 먹칠이나 하지 않으며 조금씩 채워가며 그렇게 살고싶었다. 비웃음이 난다. 내 마음속이 베베꼬이는 기분이다. 다 무너져버린 것만 같다. 지금의 나와 비교가 되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할말도 없고 내 삶이 너무 싫다. 나는 요즘 내가 왜 태어났는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민과 근심과 걱정에 빠지지도 않았을테고 내 부모님이나 주변에도 이런 근심 끼칠일도 없었을테고 눈치보이고 미안하고 염치 없고 할말 없고 슬프고 화나고 억울하고 여기서도 스트레스 저기서도 스트레스 게다가 맡은바 임무들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압박들 게으름과 즐거움에대한 갈망과의 싸움들 앞날에대한 고민들 걱정들 두려움들 정말 이 모든게 내가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면 겪을 필요도 없고 내가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필요도 없는일들인데… 요즘 어린 아이들을 보면 되려 너무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어쩌다가 태어나서 앞으로 남은 수십년의 삶속에 얼마나 많은 좌절들과 상처들과 유혹과의 싸움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왜 태어난건지. 뭐 때문에 태어난건지. 참 울적한 한탄이 마음에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난 한가지 확실히 믿는게 있다. 난 이 땅에 내가 나의 의지대로 태어나고 존재한게 아니다. ‘나’ 라는 삶을, 인생을, 영혼을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분명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창세기 28장 15절에서 약속하셨다. 나는 분명 이 땅 위에 나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로 말미암아 내 인생과 영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내 삶을 시작시키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약속을 믿는다. 내 삶을 시작시키시고 내 인생과 내 영혼이 존재하게하신 그분께서 나를 지키며, 날 이끌어서 돌아오게 하시며, 처음 계획한, 처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 삶에 대한 계획이 다 이루어질 때 까지. 그러니까, 죽는 그 순간까지. 나를 떠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는다. 내 삶을 시작시키신 내 인생의 주인, 내 영혼의 주인, 그 원래 주인인 여호와 하나님께 내 삶의 방향키를 온전히 넘겨드리고만싶다.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룻 1:20-21)
난 그저 힘없는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다루시면 다루시는대로 만지시면 만지시는대로 그럴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이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오늘도 탕자가 된 나를 바로세우시기 위해서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아낌없이 다루시는 하나님. 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나 싶다. 아, 내일은 월요일이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게으름과 즐거움에대한 갈망들 앞에서 난 또 넘어질것만 같다. 하지만 내 연약함과 내 부족함과 내 한계를 이미 알고계신 하나님 앞에서 소박하고 겸손한 고백들로 다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삶을 살고싶다. 다시금 느끼는거지만,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건 참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아직도 내가 너무 많은가보다. 추석이다. 아빠가 보고싶다. 어젯밤엔 아빠랑 같이 웃는 꿈을 꿨는데 아직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