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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오정현 목사 상대 위임무효소송 ‘기각’

정말 징하게 물고늘어진다.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게 무언가.
정의 구현? 거룩 실현? 믿음 실천?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절대 주권자 앞에 서서 뭐라고 외칠까?

‘내가 주의 이름으로 소송을 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시위를 했습니다.'
'저는 거룩했습니다, 주님’ ‘저는 의로웠습니다, 주님'
'그러므로 날 칭찬 해 주십시오, 내게 면류관을 씌워 주십시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태복음 7:23

이 땅에서는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난 오해할 수도 있고, 착각할 수도 있다. 난 객관적일 수가 없고, 기준이 될 수도 없기 때문에.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지닌 채 살아간 이유를,
이 땅에서는 다 알지 못하는 것 처럼,
그럴 수 있는거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유한하고 제한적인 시공간속을 나그네처럼 ‘일시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 보면 알게 되겠지.’ 알게 되는 시점이 꼭 이 땅이 아니더라도, 그런 믿음 가지고 살아가는거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한다면,
눈 앞에 벌어지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담대함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알아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책임과는 차원이 다른, 믿음의 담대함이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심판자가 되어서 정의를 구현하려고하고, 거룩을 구현하려고 하는 모습.
정말 잘못 된 모습이 아닌가 싶다.

창세기에서부터, 선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선 자체이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피조물 답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선악을 구분하고, 내가 직접 기준이 되고, 내가 직접 판단하고 살아가보려는 그 원죄의 피가 아직까지 우리에게 흐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외치는 게. 내가 그렇게 피켓 들고 서 있는게 사랑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가 사랑이시다. 하나님을 벗어나서는 사랑을 할 수도, 사랑을 이룰수도 없다. 그건 사랑이 아니니까.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선악의 기준. 그 자체는 하나님 뿐이다. 하나님을 끌어다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가 기준을 세우고 판단을 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하나님 자체가 기준이고,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란 말이다.

‘나 중심’의 신앙과 삶에서, 정말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삶이 되기를 기도하고, 묵상하고, 소망하는 크리스쳔들이 정말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