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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황승언 ‘그알’ 스폰서 편 방송 후 SNS에 남긴 글

황승언 인스타그램 원문

보관 해 두고싶은 글이라 남긴다.

정말정말 화가 많이 나고. 분노가 인다. 억울함까지.

저런 일에 연루되고 본인의 몸을 담그고서, 나중에는 ‘나는 몰랐었다,’ ‘ㅇㅇㅇ나쁜놈’과 같은 일종의 ‘남자 탓’만 하며 본인 행위와 선택을 정당화하고, 숨기고 포장하고, 뒤늦게 들켰을 때에는 그에 따른 동정 유발과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분을 봤다.

황승언씨는 어떤 인생을 살았고, 또 지금은 어떤 인생을 살고 계신지 잘 모르겠어서 그 인생과 그 사람 자체를 칭송하고싶진 않다. 하지만 참 옳지만 쉽지 않은 발언을, 남자가 아닌 여자의 입을 통해서 꺼냈다는 점에서 참 마음에 든다.

이에 조금 더해서, ‘남자는 가해자, 여자는 피해자’ 라는 맹목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남자도 어쩔 수 없는 면을 지닌 연약한 피조물임을 경험 이전에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려깊은 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마음과 생각의 구조를 지닌 사람을 꼭 만나보고싶다.

남자와 여자는 구별되어있다. 그렇게 창조되었다. 현대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트랜스젠더’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고, 한 인간은 한개의 성별로 태어나서 그렇게 죽는다. 서로의 성을 탐닉하며 알고자하지만, 그래서 꽤 많이도 알게된 것 같기도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그 누구도 아무리 많이 경험한다한들 서로에게 ‘객관적’이 될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말로 하면 그들은 평생 서로를 ‘객관적’으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피조물의 한계다.

객관적이시고 완전하신 창조주.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도록 구분지으신 그 창조주 하나님은, ‘돕는 베필’ 이라는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부여 해 주셨다. 이 땅위에 살아가는 피조물로써,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각자의 역할, 서로를 위한 각자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 무너지고 망가진 요즘 세상에 젖어 사는 중에는 원망부터 튀어나오기 쉽지만, 정말 하나님이 처음 계획하신 그 그림이 어떠했을지 잠시 묵상해보면 그 아름다움에 젖어들곤 한다.

남자는 남자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남자로 살아가기를 힘쓰며, 그 역할에 충실하며. 여자는 또 여자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여자로 살아가기를 힘쓰며, 그 역할에 충실하며. 그렇게 각자의 역할에 하나님 마음에 합하도록 충실한 서로가 만들어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림을 충만히 누리며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 만나고싶다.

내 인생과 가슴을 찢어놓는 배신감. 억울함과 분노에 찰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거짓과 속임수, 그리고 이기적임. 이런거 너무 싫다. 벗어나고싶다.

그래, 위에 글에도 비슷하게 언급되어있지만, 본인 성욕을 주체 못하고 돈과 명예와 권력과 인맥을 이용해 함부로 남용하는 남자도 문제지만, 그런 남자를 이용해서 한 번 ‘어떻게좀 해보려는’ 여자. 너무 무섭다. 사랑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것들도. 요즘에는 이런 일들, 이보다 더한일들, 너무너무 흔하지 않는가. 정말 창조의 그림과는 너무너무 거리가 먼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