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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커밍아웃

thinking

얼마 전 부턴가 자신이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 임을 드러내는 소위 ‘커밍아웃’을 하는것이 사회적으로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 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동성애가 죄라고 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죄의 열매.
창세때에 아담의 범죄함으로 이 땅에는 죄가 들어왔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신 생물들도 기형적으로 생겨났고,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셨던 기형적 범죄들을 계속해서 저지르며 살게 됐다. 나는 그 기형적 범죄함은 말그대로 ‘뭐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기형적인 것들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인한 열매들이다.

나는 동성애도 그와 같은 종류와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헌데, 참 안타깝게도 요즘은 급속도로 동성애가 용납되어야 하고, 용인되어야 하고, 커밍아웃을 하면 칭찬해줘야 할 일이고,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뜻하게 받아줘야한다는 분위기가 강요되고 있는 듯 하다. 또 그들에게, 그들의 행위와 태도들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에 대해서 비판과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곧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때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언제나’ 좋지는 않다는 얘기다. 그 죄 고백을 듣는 우리도 또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죄를 고백하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누군가가 죄를 어렵게 고백하여 고민 끝에 ‘커밍아웃’을 했다면, 그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품어주고, 또 그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고.

그러나 동성애를 고백하는 이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 중에는 동성애가 죄인줄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그저 한 ‘성향’ 정도로 치부하고, ‘자연스러움’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며, 죄와 타락을 일반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을 많이 본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를 육에 속한 자로만 보거나 타락한 인간으로만 본다면 동성애 또한 그 기준에서는 자연스러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회복되어야 할 존재들이다. 그 기준에서는 동성애라는 죄의 열매는 아주 부자연스럽고 부적절한 일이다.

우리는 갖가지 망가진 모습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회복되어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질 수 있는 그 출발은 내 안의 망가짐을 망가짐으로 온전히 인정하고, 또 인정할 수 있도록 돕는 일로부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라는 한 사람이, 그리고 그 주변을 이루는 사회가 내가 가진 망가짐들과 그리고 그로인해 맺게되는 기형적 죄의 열매들을 그저 한 성향의 일부로, 자연스러움의 일부로 치부해버린다면, 그 결말은 정말 끔찍해지지 않을까. 마치 고통을 쾌락이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일, 그런 잔인함 처럼 말이다.

(요즘엔 이런 분위기 또한 흐릿하게 되어가고 있는 듯 하지만,) 우리는 간음 한 자들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처벌을 하고, 다시 원래의 남편 혹은 아내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 관계라면 안타깝지만 이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이 되어있다. 이런 장치들은 간음이 잘못이었고, 누군가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줬으며,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인식을 갖는데에 있어 보탬이 된다.

다행인건진 모르겠지만, 간음에 대한 커밍아웃은 여전히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조금 극적인 예로, 내가 결혼 전에 몇명의 상대와 잠자리를 가져봤으며, 결혼 중에는 몇명의 상대를 유혹해봤으며, 그 가운데에서 있었던 깊고 끈적한 관계들을 ‘커밍아웃’이라면서 고백하진 않는다. 간혹 그를 고백하는 이들은 그 타락을 일반 혹은 자랑으로 여기며 사는 육에 속한자 이거나, 아니면 너무 무거운 마음 끝에 신뢰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조심스럽게 이야기 꺼낸 이들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얼마 전 글에도 썼던 거지만, 죄로부터의 회복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관계맺은 수많은 상대와의 그 관계, 그리고 그 상대들의 인생에게 범죄하고, 해를 입히고, 지워지지 않는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일은 저지를 수 있지만, 그것을 다시 돌이키고 회복시키는 일은 내가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영역이다. 취소한다고 취소 되는것도 아니고 말이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만하고 멈춘다고 회복되진 않는다. 모든 죄가 사실 그러하다. 우리가 해결 할 수 없는 복잡한 일임을 알기에 삐딱하게 그냥 ‘에이 뭐 어때’ 하며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버리려고 하게 되는 게 또 우리의 나태하고 영악한 마음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실제를 외면하는 일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르며 살아온 죄들을 해결 할 수가 없다.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만약 우리에게 우리가 저지르고 산 죄들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나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당장 우리가 하고싶은대로, 마음이 시키는대로 이것 저것 해보며 살아도 문제 될 게 없을거다. 내가 나중에 해결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그런 희망은 없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다. 오직 그만이 우리를 회복시키실 수 있으며, 우리가 저지른 엎질러진 물과 같은 일들도 회복시키실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은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며,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며, ‘죽음’이라는 단절과 끊어냄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하며, 그리고 그에게 온전히 나아갈 수 있으려면, 내 안에 망가진것들이 있음을 알고, 그로인한 기형적 열매들이 맺히고 있음을 인정하며, 그것들은 내가 취소하거나 회복시킬 수 없는 일들임을 앎으로, 그로인해 갖게되는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