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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목이 너무 말랐다. 마음에 드는 음료를 황급히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하나뿐인 계산대에 줄이 너무 길다. 얼마간 서서 기다리다, 도저히 안되겠음에 음료를 따서 한 모금만이라도 마셔볼까 고민이 든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이 음료는 이미 내 음료이기도 하지만 또 아직은 내 음료가 아닌,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이미’를 크게보느냐, ‘아직’을 크게보느냐에 따라서 의견이 갈릴게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느것에도 완전히 치우치지 않은, 바로 ‘somewhere in between’ 이라는거다. 이처럼,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상황에선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이미’ 이룬것이 되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고, 심지어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 되기도 한다. 용서, 사랑, 구원도 마찬가지로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여있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책임 있게 해 나가느냐에 따라 ‘이미’ 주어진 것이 되기도 하고, ‘아직’ 혹은 ‘영영’ 주어지지 않을것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따져볼 수 있는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경우를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많을거다. ‘아직’ 구매하지 않은 음료이기에 따서 마시지 않은채 계산대에 서 있는 중에는, ‘내가 손으로 이미 집고 계산을 위해 서있다’는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있지만, 여전히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도 큰 문제가 없을만큼 선택이 자유롭다. ‘이미’ 구매한 음료라는 생각으로, 계산대에 서 있는 중에 따서 마신다면, ‘이미 구매했다’는 확실한 전제에 대한 더 큰 책임이 따를거다. 그런 상태로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면, 그것은 범죄가 되는거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미’ 구매했다고 가정 한 것을 ‘실제’로 구매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책임을 다 해서, 지켜내야 할 거다. 계산 전에 따서 마셨으므로 무조건 ‘범죄다’ 라고 몰아세워버리기엔 너무 이르고,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 하는 마음과 모습을 지켜볼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행여 피치못할 사정으로 ‘범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면, 사랑하는 누군가의 ‘사랑하기에 이미 용서했으나 또 아직 용서하진 않은,’ 그런 ‘이미와 아직 사이의 용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책임 있고 정직한 마음과 모습을 보여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