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우리를 하나님 형상대로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부르신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
성령님은 이미 되어진 우리 육체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육체를 자신의 것으로 삼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 6:16)
이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숨겨두신 비밀스런 관계가 있으니 바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2)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와 같이 흙에서 바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남자의 ‘형상’을 취하여 지으셨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취하여 지어진 것 처럼. (하지만 남자와 여자 모두 결국은 하나님의 손끝에서 지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2)
태초에 지어질 때부터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모습을 남자와 여자의 관계 안에도 숨겨두셨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사랑하다 못해 목숨까지 내어주고싶을만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의 육체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그 아내의 몸은 온전히 남편이 주장하는 몸이 된다. 생명까지 내어주며 사랑하겠다는 그이의 고백은 그렇게 완성된다. 마치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고 사랑하다 못해 목숨까지 내어주고싶을만큼 사랑하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거하시고 그렇게 우리의 전 인격과 삶이 하나님의 것이 된 것 처럼 말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을 온 마음과 몸으로 깊숙히 받는다. 그런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을 영화롭게 하는 표현이 터져 나오게 된다. 그것은 억지로나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요, 그이를 온전히 받게됨으로 하게되는 표현일거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몸 안에는 이제 당신의 생명이 사는 것이다’는 그녀의 고백은 그렇게 완성된다. 마치 하나님의 놀랍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느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삶으로, 노래로,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찬양하게 되며 영화롭게 하는 것 처럼 말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아름다운 고백이 떠오르는 것 같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갈구하고, 간구하듯이, 아내도 남편의 사랑을 더 갈구하고 간구한다면 참 아름답지 않을까? 그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듯, 남편도 그런 아내를 잠잠히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 처럼,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그남자의 자녀가 태어난다. 그리고 그 모든 생명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그렇기에 난 성관계를 ‘임신을 위한 거사’라던가, ‘자녀를 갖기위한 행위’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본질에서 살짝 벗어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본질에서 벗어난 생각이 최 우선이 되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할 때, 찾아드는 것은 ‘임신에 대한 부담’이나 ‘피임에대한 걱정’혹은 ‘두려움’이지 않겠는가. 우리가 오로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구하고, 궁금해 할 때, ‘걱정’이나 ‘두려움’은 들어설 틈도 없이 ‘이 모든 것’이 저절로 더하여지는 것 처럼, 마치 그와 비슷하게, 남편과 아내가 하나됨과 깊은 관심과 애정만을 서로에게 쏟을 때. 남편은 자신의 생명까지 아내에게 쏟아내며 사랑하고, 또 아내는 그 사랑을 기쁨과 감격으로 받아내는데에 모든 집중을 쏟을 때. 바로 ‘걱정’이나 ‘두려움’은 들어설 틈도 없이, 생명을 잉태하는 축복은 선물처럼 주어지고, 저절로 따라오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은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아닐까. 참 놀랍지 않은가. 난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고 아름답고 신비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셀수 없이 많은 편지를 써주셨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표현과, 간절한 매달림을 보여주셨고, 거기에서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하시고, 우리와 하나되어 자녀까지 주셨다. 게다가 자녀에만 매달려서 우리를 내 팽겨치신 게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녀까지 기꺼이 포기하셨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누린 남편은, 아내를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사랑해줄 수 있을거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누린 아내는,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듯, 우리가 하나님을 더 간구하듯, 남편의 사랑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가히 ‘선 순환’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각자의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라는 ‘아내’는 ‘남편’이신 하나님 앞에 좋고 현숙한 아내가 아니다. 항상 제멋대로고, 고집세고, 다른것에 쉽게 관심을 빼앗기고, 우리의 감정을 앞세우기에만 능숙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남편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고, 여전히 좋다고 하시고, 괜찮다고 하시고, 거룩하다고 하신다. 그런 남편앞에 합당한 아내의 반응은 무엇이겠는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의 참 표본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아닐까. 뭔가 거울같은 느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