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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나라를 비판하고 비판 기사를 공유해대는 사람 중에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의구심이 든다.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하고있는 사람들 중에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도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나부터가 당췌 나를 못믿겠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간혹 부럽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나를 기민하게 살펴봐도 알 수 있고, 수 많은 이단 사이비를 보고서도 알 수 있듯이, 신념과 확신은 반드시 우상을 만든다.

크리스천이 정치 참여를 해야한다고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천은 선행을 해야한다,’ ‘크리스천은 이웃을 사랑해야한다.‘와 같이 얼핏 듣기에 맞는 말,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도 또한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에 따른 열매로써 삶에서 선한 영향력이 ‘저절로’ 풍겨져 나오게 되는 게 순서인 것 처럼, 크리스천이 세상의 일에 참여를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의 순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서, 단지 내 감정이 선했기 때문에, 단지 내 느낌이 정의로웠기 때문에, 혹은 옆사람이 그렇게 인정해준다고 해서, 그것을 선한 일, 정의로운 일로 합리화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하나님’ 이름만 가져다가 합리화를 하는 일 또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혹은 그 어떤 이유와 핑계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해내고, 내 신념을 사수하는 일. 비단 이단 사이비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내가 정치 참여를 하고싶기 때문에, 혹은 그런 나를 합리화하고 변호하기 위해, 이런 저런 믿음과 신념을 가져다가 ‘크리스천은 정치에 참여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나라와, 민족과, 이웃을 사랑하기에 ‘저절로’ 세상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과는, 겉보기에는 비슷할지라도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단 사이비에도 사람들은 수도 없이 모이고.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 정의와 공의, 그리고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그럴싸한 ‘사이비’ 활동들에도 사람들은 수 없이 모여든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믿음과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그 믿음과 신념을 따라 극단적인 행동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바로 그런 존재다.

믿을 수 없는 ‘나.’ 믿어선 안되는 ‘나.’ 그런 ‘나’ 여럿이 모여서 의견을 같이 한다고 정의와 공의와 사랑이 탄생하진 않는다. 거기다가 ‘예수님 이름’이나 성경구절 몇 개 인용한다고해서 탄생되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생각 해 보면, 그런 ‘나’ 라는 존재에 신념과 확신이 들어서는 순간,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정당화 되는 것 같다.

그런 나를 인정하고 나를 부인하는 일. 가장 먼저 행해져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