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권을 위임 해 주셨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특권 말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 한 남편과 한 아내. 그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개체다. 다르게 지어졌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그런 다른 두 존재다. 한 생명과 또 다른 한 생명. 한 영혼과 또 다른 영혼. 두 명의 다른 존재. 그 다른 두 존재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한 생명이 될 수 있고, 한 영혼이 될 수 있고,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권한’을 우리에게 ‘위임’ 해 주셨다. 선물처럼 말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너무 사랑할 때, 너무 사랑해서 더 주고 싶고, 주고 싶고, 더 줄 수 없는 지경까지 사랑할 때, 그리고 한 여자가 그 남자를 마찬가지로 너무 사랑할 때, 그 남자의 사랑도 너무 고맙고, 더 주고 싶고, 주고 싶고, 더 줄 수 없는 지경까지 사랑할 때, 그런 두 사람. 전혀 하나될 수 없는 두 개체, 두 인격, 두 생명, 두 영혼이 하나될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위임 해 주셨다는거다. 그 표현의 정점에 있고, 그것을 완성하며, 서로의 생명을 서로의 생명에 새기며, 또 다른 생명을 위임받는 그 특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 된, 이미 하나 된, 그 관계를 둘로 쪼개어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권한은 우리에게 위임되어있지 않다. 내가 더 이상 누군가와 만나지 않고,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남보다도 못한 그런 사이가 된다고 해서, 이미 하나가 되어버린 그것을 갈라낼 수 없다는거다. 우리 소관의 일이 아닌거다.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은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과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통회하고 자복하는 심령으로 나아갈 때,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회복을 시켜주실 수도 있을꺼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건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거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을 남용한다. 하나님께서 부여 해 주신 그 정점의 사랑표현, 내 생명과 내 몸과 내 영혼을 내어주는 그 사랑표현을, 단지 마음이 원해서, 감정이 원해서,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내가 내어주고 싶은 마음보다 상대방의 내어줌을 더 원하고, 상대방을 더 원하고 나의 소유로 만들고 싶어서, 그렇게 이기적인 동기로, 남용한다는거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우리에게 위임된 특권들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 한 육체가 되고, 한 영혼이 되고, 그렇게 몸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영혼을 나누고, 생명을 나누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지언정, 내가 나중에 그 사람과 이성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이별을 고하고 영영 안보는 사이로 산다 한들, 하늘에 새겨진 하나된 관계마저 지워낼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라는거다. 우리는 실수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실수들 말이다. 무지하고 우매해서 그럴 수 있고,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 또 연약하기에 감정이나 분위기에 치우쳐서 넘어질 수 있을거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그렇게 특권을 남용해서 하나 되어버린 관계를 다시 원상복귀 시키고, 회복시키고, 처음 상태로 돌려낼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는 없다는거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더 나아가야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가 참 많고, 내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내가 뭐라도 된 것 처럼 착각하고 살아가기가 참 쉬운 존재들이지만, 우리한테 주어지지 않은, 여전히 하나님의 소관 하에만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걸 잊지 말아야한다. 우리는 우리가 단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성에 관련하여 토론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구 떠올라, 급하게 적어본다.